
5년 만에 걸쳐 입은 가죽 재킷은 몸에 맞지 않는 갑옷처럼 삐걱거렸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내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지옥이 기다릴 거라 생각했지만, 차라리 몸으로 부딪히는 전쟁터가 방구석의 미친 생각들보단 나을 거라 확신했다.
그것이 내 오판의 시작이었다.
약속 장소인 오래된 카페 문을 열자, 딸랑이는 종소리와 함께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진수는 5년 전 밑바닥 시절의 냄새를 완전히 지워버린 채, 말끔한 정장을 입고 앉아 있었다. 나를 본 놈의 얼굴에 반가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기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선배, 진짜 오랜만이다. 안 올 줄 알았는데... 나와줘서 고마워."
나는 놈의 겉치레 섞인 인사를 무시하고 테이블 맞은편에 묵직하게 앉았다. 놈은 미안하다는 말로 운을 떼며, 두꺼운 서류 봉투 하나를 내 앞으로 슬그머니 밀었다. 5년 전 나를 파멸시켰던 그 거대 기업의 로고가 선명한 봉투였다.
"이게 뭐지?"
"5년 전 선배 담근 놈들 장부랑, 이번 대구 재개발 지구 핵심 채권 서류야. 선배가 다시 대가리 잡고 지휘해 줘야 해."
"5년 전 선배 담근 놈들 장부랑, 이번 대구 재개발 지구 핵심 채권 서류야. 선배가 다시 대가리 잡고 지휘해 줘야 해."
진수의 눈빛 속에는 15년 전 삐끼 시절 내 뒤를 쫓아다니던 탐욕스러운 들개의 눈빛이 살아있었다. 나는 봉투를 쥐었다. 드디어 이 쥐구멍 같은 삶을 끝내고 놈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복수의 첫 주사위는 굴러갔고, 나는 놈이 이끄는 차로 몸을 실었다. 지옥의 시작점으로 향하는 줄도 모르고.
차가 멈춰 선 곳은 대구 외곽의 한 음산한 폐공장 부지였다. 재개발 구역을 확인하러 가자는 진수의 말에 의심 없이 내렸지만, 사방이 어둠으로 내려앉은 그곳에는 진수의 부하들이 아닌,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인물을 본 순간, 내 온몸의 피가 차갑게 굳어버렸다. 5년 전, 내 모든 것을 시기해 덫을 놓고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진짜 배후, 강 회장이었다.
"어이, 김 사장. 5년 동안 쥐새끼처럼 처박혀 있더니 꼴이 그게 뭔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내 등 뒤에서 둔탁한 충격이 전해졌다. 털썩, 무릎이 시멘트 바닥에 꺾여 내동댕이쳐졌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방금 전까지 내게 형님이라 부르며 서류를 내밀던 진수가 강 회장 뒤편으로 걸어가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강 회장님, 말씀하신 대로 쥐구멍에 숨어있던 놈 끄집어내 왔습니다."
진수의 목소리에는 어제의 미안함 따윈 없었다. 놈은 처음부터 동맹이 아니었다. 내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기 위해 적들이 보낸 잔인한 사냥개였을 뿐이다.
강 회장의 구둣발이 장판 바닥이 아닌, 내 뺨을 짓눌렀다. 5년 만에 큰소리치며 걸어 나온 세상의 공기는 비참하리만치 차가웠다. 놈들의 비웃음 소리가 귀를 찔렀고, 사내들의 몽둥이가 사정없이 내 어깨와 등 위로 쏟아져 내렸다. 신음조차 나오지 않는 고통 속에서, 나는 시멘트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피 섞인 침을 뱉어냈다.
과거의 원룸 구석이 지옥인 줄 알았다. 그 어둠 속에서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존재가 없다며 서러워했던 내 자신이 가소로워질 정도였다. 진짜 지옥은 방 밖에 있었다. 믿었던 후배의 잔인한 기만, 그리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짓밟히는 이 냉혹한 멸시.
바닥에 뭉개진 얼굴 사이로 눈물이 핏물과 섞여 뚝, 뚝, 뚝 떨어져 내렸다. 과거의 방구석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비굴하게 짓밟히는 수렁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잔인한, 바닥 없는 진짜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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