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 장부나 차명 계좌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대성의 거대한 권력 앞에서 그딴 종이 쪼가리나 숫자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놈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우선 철저하게 살아남아 세상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먼저였다.
나는 가죽 재킷을 내다 버렸다.
그리고 도심에서 가장 어둡고 소외된 역전 골목의 노숙자들 틈으로 스며들었다.
낮에는 뙤약볕 아래서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져라 새벽 인력 시장의 일당벌이 용역을 다녔고,
밤에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밤하늘을 보았다.
손톱 밑에는 지워지지 않는 검은 때가 박혔고, 뺨에는 먼지와 땀이 뒤범벅된 꾀죄죄한 노숙자의 행색이 내려앉았다.
5년 전 대성의 한 팀장이었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하루 숨을 쉬고 버텨내는 것 자체가 강 회장 무리를 향한 지독한 복수의 서막이었다.
그렇게 3년이 흐르고 어느날 ...
유령처럼 살아가던 어느 겨울날 새벽, 기회가 찾아왔다.
인력사무소 쪽방에서 매일같이 나와 나란히 누워 지내던 나이 많은 노숙자, '김진호'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지독한 영양실조와 한파를 이기지 못한 흔한 길거리의 죽음이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고, 연고도 없는 그의 죽음을 눈여겨보는 이는 감시원들조차 없었다.
그의 머리맡에 뒹굴던 낡은 지갑, 그리고 그 안에 꽂혀 있던 꼬질꼬질한 주민등록증이 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머릿속에서 번쩍이는 전율이 일었다.
바닷속으로 사라진 '한 팀장'은 오늘로 완벽하게 죽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이 세상에 연고도, 추적할 단서도 없는 '김진호'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의 주민등록증을 내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놈들의 목을 베기 위해, 나는 기꺼이 죽은 자의 이름을 뒤집어썼다.
"어이, 김 씨! 오늘 인력 나가야지, 안 일어나?"
새벽 반장이 문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흙먼지 묻은 얼굴로 대답했다.
"…예, 나갑니다."
김진호. 이제 그게 내 새로운 빛이요 복수의 무기가 된다.
그게 내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이다.
(제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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