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배 맞지? 나 진수야. 혹시 아직 거기에 살고 있어? 내일 잠깐 볼 수 있을까 해서.
액정 위로 뜬 이름 석 자를 보는 순간, 잘게 떨리던 손가락 사이에서 말보로 레드 연기가 거칠게 뿜어 나왔다. 침을 한 번 삼켰다.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진수. 이 개 같은 놈의 이름이 왜 하필 내가 인생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처박혀 숨도 못 쉬고 있는 오늘 날아온 것일까.
5년 전, 내 인생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때 내가 마지막으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으려 전화기를 붙들었던 놈이다.
수십 번의 부재중 전화와 처절했던 문자 메시지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나를 이 퀴퀴한 원룸 구석으로 밀어 넣었던 인간.
피식, 조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내 심장이 쿵쾅거리며 아랫배 가득 묵직한 열감이 차올랐다.
이 문자는 지옥 같았던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고문일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내 안의 잠자던 무언가를 깨우는 유혹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이런 나약한 방구석 폐인이 아니었다.
15년 전, 강남역 뒷골목의 지독한 악취가 진동하던 유흥가 바닥이 내 진짜 고향이었다.
나와 진수는 밤마다 전단지를 쥐고 취객들을 끌어모으던 술집 '삐끼'이자 막내 웨이터였다.
한겨울에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온갖 인간들의 오물과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그 개바닥.
거기서 나는 악으로, 깡으로 기어 올라갔다.
눈치가 빨랐고 칼을 쥘 줄 알았다.
유흥 바닥을 먹고 나니 강남 룸살롱들의 대가리가 되었고, 사설 카지노 정켓 방의 지분을 쥐며 자금을 굴렸다.
마침내 대구와 부산의 대형 기획 부동산 시행권까지 손에 쥐었을 때, 나는 명실상부한 이 바닥의 원탑, 꼭대기에 서 있었다.
돈과 권력, 세상을 다 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정상의 자리는 독이었다.
밑바닥에서부터 함께 피를 흘리며 올라온 줄 알았던 주변의 새끼들은 나를 따르는 게 아니라, 시기와 질투로 눈이 뒤집혀
내 목덜미를 물어뜯을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다.
5년 전 단 한 번의 배신과 기획 사기 덫에 걸려 내가 모든 걸 독박 쓰고 추락할 때,
가장 먼저 손을 털고 숨었던 들개 무리 중 하나가 바로 이 진수였다.
담배 연기가 방 안에서 서서히 흩어져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가면 지옥이겠지."
혼잣말을 뱉으며 나는 스마트폰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처박혀 생각에 미쳐 죽어버리는 것보다는,
나를 무너뜨린 놈들의 사지를 찢어발기러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내 체질에 맞았다.
두려움을 모르고 살며 뼈에 새긴 룰이 있었다. 받은 건 배로 갚는다.
나는 5년 만에 처음으로 답장을 타이핑했다.
[내일 오전 11시. 원룸 앞 카페로 나와라.]
몸에 찌든 담배 냄새를 거칠게 씻어내고, 5년 동안 먼지가 쌓여있던 가죽 재킷을 꺼내 걸쳤다.
거울 속 내 눈빛은 어젯밤 울던 먼지 같은 남자의 눈이 아니었다. 다시 사냥을 시작하는 굶주린 들개의 눈이었다.
문을 열자, 눈이 부실 정도의 아침 햇살과 함께 지옥 같은 세상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이제, 진짜 내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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