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4 제6화 : 죽은 자의 이름으로 비밀 장부나 차명 계좌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대성의 거대한 권력 앞에서 그딴 종이 쪼가리나 숫자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놈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우선 철저하게 살아남아 세상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먼저였다.나는 가죽 재킷을 내다 버렸다.그리고 도심에서 가장 어둡고 소외된 역전 골목의 노숙자들 틈으로 스며들었다.낮에는 뙤약볕 아래서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져라 새벽 인력 시장의 일당벌이 용역을 다녔고,밤에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밤하늘을 보았다.손톱 밑에는 지워지지 않는 검은 때가 박혔고, 뺨에는 먼지와 땀이 뒤범벅된 꾀죄죄한 노숙자의 행색이 내려앉았다.5년 전 대성의 한 팀장이었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하루하루 숨을 쉬고.. 2026. 9. 20. 제5화 : 칠흑 속의 칼날 귀를 찢을 듯한 수포 소리가 뭉개지며 이내 완전한 암흑 과 정막이 찾아왔다.'이제 정말 끝이구나.' 폐부 깊숙이 차오르는 질식감과 온몸을 짓누르는 콘크리트의 무게 속에서 나는 마지막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사방은 그 어떤 불빛도 허락하지 않는 수중의 지옥이었다.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부하들이 서두르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덜 닫혀 있던 드럼통 뚜껑의 틈새로 엄청난 수압의 바닷물이 무섭게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콸콸거리며 들이친 바다 거품이 가슴께까지 차올랐던 콘크리트 반죽을 거칠게 휘감았다.아직 채 굳지 않은 시멘트가 바닷물에 쓸려 힘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몸을 짓누르던 묵직한 압박감이 서서히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살 수 있다. 나올 수 있다. 어둠뿐이던 시야 너머로 날카롭고 서늘한 희망의 .. 2026. 9. 19. 제4화 : 검은 정막 강회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묻어라." 강 회장의 한마디는 서늘하고도 짧았다. 사냥개로 다시 거두겠다는 제안 같은 건 없었다. 쓸모를 다한 소모품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듯,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그 길로 내 시야는 암전되었다. 머리에 씌워진 거친 천 조각 너머로 들이치는 빗소리와 진수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멀어졌다. 몸이 밧줄로 단단히 결박된 채, 나는 차가운 봉고차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덜커덩거리는 차체의 진동과 함께 가죽 재킷 속으로 스며든 진흙이 살을 서늘하게 긁어내렸다. 5년 만에 방 구석을 탈출한 대가가 결국 이것이란 말인가. 차량의 엔진음이 한참을 울린 끝에 멈추었을 때, 코끝을 찌른 것은 비릿한 짠내와 거친 파도 소리였다. 바다였다. "영차, 무거우니까 조심해서 올려.. 2026. 9. 19. 제3화 : 더 깊은 수렁 5년 만에 걸쳐 입은 가죽 재킷은 몸에 맞지 않는 갑옷처럼 삐걱거렸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내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지옥이 기다릴 거라 생각했지만, 차라리 몸으로 부딪히는 전쟁터가 방구석의 미친 생각들보단 나을 거라 확신했다.그것이 내 오판의 시작이었다.약속 장소인 오래된 카페 문을 열자, 딸랑이는 종소리와 함께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진수는 5년 전 밑바닥 시절의 냄새를 완전히 지워버린 채, 말끔한 정장을 입고 앉아 있었다. 나를 본 놈의 얼굴에 반가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기묘한 미소가 떠올랐다."선배, 진짜 오랜만이다. 안 올 줄 알았는데... 나와줘서 고마워."나는 놈의 겉치레 섞인 인사를 무시하고 테이블 맞은편에 묵직하게 앉았다. 놈은 미안하다는.. 2026. 9. 19. 이전 1 다음